[인사동 갤러리 산책] 실과 철사로 엮어낸 내면의 심상, 서영민 작가의 ‘무한한 감정세포’
골목마다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와 세월의 결이 묻어나는 인사동은 언제 찾아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줍니다.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잠시 벗어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곳곳에 숨겨진 갤러리와 마주하게 되는데, 인사동 산책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예술적 영감에 있습니다.

이번에 발길이 닿은 곳은 인사동 11길에 자리한 KCDF갤러리였습니다.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디자인 공모전시로 진행 중인 서영민 작가의 개인전, 《무한한 감정세포 (Infinite Emocell)》(2026.08.26 ~ 09.06)를 관람하며 실과 철사라는 물성이 전하는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상의 감정을 일기처럼 엮어낸 '감정세포'
전시장 벽면에 적힌 작가 노트의 문장이 먼저 시선을 끌었습니다.
"생존의 울음에서 시작된 감정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연결되고 축적된다... 작가는 매일 일기를 쓰듯 철사와 실을 손끝으로 반복해 엮어 나간다."
서영민 작가는 섬유예술을 기반으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관계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감정세포(Emocell)'라는 개념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실과 철사라는, 언뜻 보면 연약하고 가느다란 선들이 손끝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입체적 구조물로 탄생하는 과정 자체가 마치 우리가 매일 삶을 지탱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과 닿아 있습니다.
공간을 채우는 중력과 확장의 조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닥과 공중, 벽면을 유기적으로 잇는 대형 설치 작업들이 깊은 인상을 줍니다.
* 수직으로 피어오르는 유기적 생명력
바닥에 놓인 대형 원형 거울 위로, 보랏빛과 푸른빛이 감도는 가느다란 실과 철사의 다발이 천장을 향해 회오리치듯 피어오릅니다. 거울에 비친 아래 공간과 천장으로 뻗어 올라가는 구조물이 맞물려, 내면의 감정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무한한 공간으로 증식하고 소통하는 듯한 감각을 전달합니다.


* 틀을 벗어난 감정의 궤적
천장에 와이어로 매달린 사각 프레임과 이를 감싸며 흘러내리는 붉은 와이어 매시 형태의 작품은 정형화된 틀(Frame)에 갇히지 않는 감정의 자유로움을 보여줍니다. 벽면과 바닥에 드리운 은은한 그림자까지 하나의 구조가 되어,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입체감을 만들어냅니다.
* 밀도와 여백이 만든 심상의 풍경
벽면에 정갈하게 걸린 액자 연작들은 실과 철사를 엮은 밀도의 차이를 통해 감정의 다양한 결을 드러냅니다. 중심부가 촘촘하게 엉켜 응축된 에너지를 뿜어내는가 하면, 어떤 프레임은 중심이 비워진 채 유연한 외곽선만으로 여백의 호흡을 전달합니다. 캔버스 위에 깔때기나 샘처럼 입체적으로 솟아난 은빛·연보랏빛 구조물 역시 솟구치는 감정의 에너지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선(線)이 건네는 위로와 성찰
서영민 작가의 작업에서 '무한'은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의 팽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선들이 서로를 얽어매고 지탱하며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내듯, 우리의 삶과 관계 역시 매 순간 생성과 변화를 거치며 단단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차가운 금속성을 지닌 철사와 따뜻하고 부드러운 실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텍스처는 낯설면서도 깊은 안정감을 줍니다. 손끝으로 한 땀 한 땀 엮어낸 시간의 축적이 공간 전체를 은은하고 단단한 공기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산책을 마무리하며
인사동의 작은 골목에서 만난 이번 전시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 안의 감정들을 조용히 응시하게 만든 뜻깊은 쉼표였습니다.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선과 공간이 빚어내는 고요한 대화에 귀 기울이고 싶은 분들에게 인사동 갤러리 골목 산책과 KCDF갤러리 방문을 권해드립니다. 조용한 발걸음 끝에 만나는 작품 한 점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을 남겨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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