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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

[인사동 갤러리 산책] 인사아트프라자, 인사동사람들전 (9.2~9.7)

무더위가 다소 가시고 아직은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섞여 불어오는 늦여름의 길목,  인사동 거리를 거닐다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를 찾았습니다. 화려한 도심 한복판에서 전통의 숨결과 현대 예술의 감각이 공존하는 인사동은 걷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새로운 영감과 여유를 안겨주는 곳입니다. 이번 산책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바로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전관(1, 2, 3층)에서 펼쳐지고 있는 2026 제34회 (9.2~9.7) 인사동사람들전이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그 네 번째 이야기 속으로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붉고 따뜻한 톤의 대형 배너가 관람객을 맞이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네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열린 이번 전시는 수많은 작가의 열정과 개성이 집약된 대규모 기획전입니다. 회화, 섬유, 캘리그라피, 수채화, 옻칠 및 혼합매체 등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수백 점의 작품들이 각 층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넓고 쾌적한 화이트 큐브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빛깔을 뿜어내는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가들의 시선이 한 공간에 모여 거대한 예술적 하모니를 이루는 듯한 광경이었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벽면을 따라 걸으며 유독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차분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눈이 호강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작품이 너무 많아서 저의 시선을 사로잡은 다채로운 작품 세컷만 소개합니다.



1. 손현주 작가의 〈소백산의 추억〉


맑고 푸른 수채의 농담으로 그려낸 손현주 작가의 〈소백산의 추억〉 앞에서는 잠시 계절을 건너뛴 듯한 서늘한 정적을 느꼈습니다. 흰 눈이 소복이 덮인 능선 위에서 모진 비바람과 세월을 버텨낸 고사목의 자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앙상하지만 굳건한 나뭇가지와 푸른 설경의 명암 처리는 겨울 산의 묵직한 고독감과 함께, 혹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2. 손명주 작가의 시와 먹의 만남 〈한계령〉


손명주 작가의 〈한계령〉은 문학과 시각 예술의 깊이 있는 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양희은의 노래로도 잘 알려진 한계령의 노랫말과 시구를 담백하면서도 힘 있는 서예 필치로 새겨 넣고, 하단에는 겹겹이 중첩된 산맥의 능선을 짙은 먹과 담채로 표현했습니다. 굽이치는 능선의 실루엣을 따라 글씨가 산길처럼 이어지는 구성이 매우 독창적이었으며, 가만히 서서 시구를 읊조리다 보면 인생의 굽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듯한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3. 이오숙 작가의 향토적 온기 〈환한 미소〉


거친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원목 판재를 캔버스 삼아 작업한 이오숙 작가의 〈환한 미소〉는 유난히 정겹고 따뜻한 작품이었습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 위로 탐스럽게 매달린 붉은 감들이 도톰한 마티에르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목판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번진 흙빛과 흰 눈, 주홍빛 감의 대비는 유년 시절 시골집 마당의 아늑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입가에 편안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목재의 거친 질감이 작품의 정겨움을 한층 더해주었습니다.


예술이 건네는 일상의 쉼표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작가마다 지닌 고유의 호흡과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원로 작가부터 중견, 신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배경과 시선을 지닌 예술가들이 인사동이라는 상징적인 공간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렇게 온전히 색채와 조형의 세계에 젖어드는 시간은 번잡했던 머릿속을 맑게 비워주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줍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작은 발걸음 하나가 하루를 얼마나 풍요롭게 바꿀 수 있는지 다시금 실감한 산책이었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도심 속 문화적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정겨운 골목과 다채로운 예술이 공존하는 인사동 갤러리 골목을 천천히 거닐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발길 닿는 전시장 안에서 마주하는 한 점의 그림이 지친 일상에 뜻밖의 위로와 깊은 감동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 인사동사람들전 소개

* 탄생 배경: 1990년대 후반 인사동의 상업화 속에서 순수 미술의 창작 열기와 예술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중견·원로 작가들이 연대해 2000년대 초반 시작한 대규모 정기전.

* 장르와 세대의 융합: 서양화, 한국화, 서예·캘리그라피, 섬유·칠예 등 전 장르를 아우르며 원로·중견·신진 작가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열린 연대의 장.

* 대중적 소통: '한여름 밤의 꿈' 등 친근한 테마로 문턱을 낮추고,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전관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축제형 전시 지향.

* 예술적 의의: 옛 인사동이 가졌던 '자유로운 창작과 교류'라는 본래의 예술 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가는 대표적 정기 미술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