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갤러리산책

[인사동 갤러리 산책] 갤러리 루벤, 양경희 개인전 (9.2 ~ 9.8)

[전시 리뷰] 인사동 갤러리 루벤, 양경희 개인전 〈회상 : Reflections〉 — 물과 색이 빚어낸 찬란한 기억의 조각들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9월, 점심식사 후 지인들과 인사동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수많은 갤러리와 고풍스러운 골목길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유독 발걸음을 멈추게 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인사동 골목 안쪽에 자리한 ‘갤러리 루벤(Gallery Ruben)’에서 열린 서양화가 양경희 작가의 6번째 개인전, 〈회상 : Reflections〉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수채화라는 매체가 지닌 무한한 깊이와 색채의 울림에 압도되었습니다. 흔히 ‘수채화’라고 하면 투명하고 여린 파스텔톤의 풍경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양경희 작가의 화폭은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한 강렬한 색감과 밀도 높은 에너지, 그리고 섬세한 번짐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전시 기본 정보

* 전시명: 양경희 개인전 〈회상 : Reflections〉 (The 6th Exhibition of Yang Kyung-Hee)

* 전시 기간: 2026년 9월 2일(수) ~ 9월 8일(화)

* 오프닝: 2026년 9월 2일(수) 오후 4시

* 전시 장소: 갤러리 루벤 (Gallery Ruben)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5길 4

* 문의: 02-738-0321




"회상은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품은 오늘이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도록 속 작가노트 한 구절이 깊게 와닿았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문득 마음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래전 걸었던 길, 계절의 향기, 따뜻한 햇살, 스쳐 지나간 풍경 하나가 잊고 지냈던 기억을 조용히 불러냅니다.

이번 전시 '회상'은 그렇게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던 소중한 순간들을 수채화로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물과 색이 천천히 스며들어 하나의 풍경이 되듯, 우리의 삶도 수많은 시간과 추억이 모여 오늘을 만들어 갑니다."


작가는 기억을 박제된 과거로 보지 않고, 붓끝의 물과 색이 번져가듯 현재의 우리 마음에 스며들어 내일을 살아갈 힘을 건네는 따스한 생명력으로 해석합니다.



화폭에 담긴 시선과 대표 작품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저마다의 뚜렷한 서사와 계절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1. 기억은 꽃이 되어 (watercolor on paper, 91.0 × 72.0cm)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를 장식한 대표작입니다.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코발트블루 화병 위로 타오르는 듯한 주황과 노란빛의 꽃들이 폭발하듯 피어납니다. 배경의 붉고 노란 면 분할은 추상적이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주며, 그 위로 흩날리는 들꽃들의 섬세한 묘사가 감탄을 자아냅니다. 물감이 종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번짐 기법과 정교한 붓 터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참 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2. 푸른 생명력의 소나무 — '기억의 푸름'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거친 수피(나무껍질)와 솔잎의 빽빽한 질감을 수채화로 이토록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는 듯한 과감한 구도, 짙푸른 솔잎 사이로 비쳐 드는 아침 햇살과 하늘의 번짐은 숲 한가운데 서서 솔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듯한 상쾌함을 전해줍니다. 거친 세월을 버텨낸 소나무의 굳건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가 느껴집니다.



3. 전통 살문 너머로 흩날리는 벚꽃의 봄


한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통 격자무늬 문창살을 프레임으로 활용한 작품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래된 고택의 문을 열면 곧바로 눈앞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흐드러진 벚꽃 잎들이 담겨 있습니다. 은은한 보랏빛 배경과 어우러져, 마치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의 어느 봄날이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문틈으로 조용히 엿보는 듯한 서정성을 안겨줍니다.



4. 빛의 도시와 해바라기

물 위에 비친 이국적인 수상 도시(베네치아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돔 성당과 운하)의 황금빛 노을 풍경, 그리고 전면에 당당히 피어난 해바라기가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물결에 어리는 도시의 반영과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의 노란빛이 어우러져 공간 전체를 긍정적이고 찬란한 온기로 가득 채워줍니다.



5. 묵직한 푸른 화병과 보랏빛 꽃들의 향연

고전적인 형태의 블루 화병에 라일락, 수국, 델피늄을 연상시키는 보라와 파랑, 흰 꽃들이 소담하게 담긴 정물화입니다. 푸른 톤의 바닥과 배경 속에서 알알이 피어난 꽃송이들이 청량하면서도 차분한 안도감을 선사합니다. 번짐 기법을 극대화한 배경 처리가 꽃들의 존재감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합니다.



수채화의 지평을 넓히는 작가, 양경희



약력을 살펴보니 양경희 작가는 이미 미술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중견 수채화가였습니다.

* 전시 이력: 개인전 6회 개최, 아트페어 및 개인부스전 4회, 2014~2026 국제교류전·그룹전·협회전 다수 참여

* 수상 경력:

   * 세계평화미술대전 수채화부문 대상

   * 나혜석미술대전 특선 4회

   * 한국수채화공모전 특선 4회, 입선 3회

   * 경기미술대전 특별상 1회, 특선 3회, 입선 2회

   *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특선

* 현재 활동: 나혜석미술대전 초대작가, 경기미술대전 초대작가, (사)수원미술협회 회원, (사)한국수채화협회 회원, (사)경기수채화협회 사무국장

다수의 공모전 대상과 초대작가 이력이 증명하듯, 작가의 손끝에서 다뤄지는 물의 농담 조절과 색채 배합은 오랜 수련과 치열한 작업열정이 응축된 결과물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서



양경희 작가의 작품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마음속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던 '따뜻했던 순간들'을 조용히 꺼내어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복잡하고 숨 가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물과 색이 빚어낸 맑고 풍요로운 위로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전시입니다. 2026년 9월 8일(화)까지 진행되니, 맑은 가을날 인사동 쌈지길 근처를 지나실 계획이 있다면 갤러리 루벤에 들러 다정한 기억의 꽃들을 직접 마주해 보시길 바랍니다.